재미있는 무술 이야기

진식태극권의 10대 요론

운영자 2007.04.20 13:48 조회 수 : 442

1) 理  
  대개 萬物은 흩어지면 반드시 모이고, 나누어지면 반드시 합쳐 진다. 天地間에 四面八方에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만상은 각각 所屬이 있으며 千差萬別의 區別이 있으나, 모든 것은 그 根源이 있기 마련이다.

대개 한 가지 根本이 만 가지로 나누어질 수 있으며, 만 가지로 나누어진 것은 또한 한 가지 根源으로 돌아가듯이 拳術學도 또한 例外가 아니다. 대저 太極拳이라는 것은 千變萬變하며 그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勢力은 비록 같지 않지만 만 가지 姿勢가 하나로 귀일 한다.

또한 하나라는 것은 머리끝에서 발끝에 이르기까지, 안으로는 五臟六腑와 筋骨로부터 밖으로는 皮膚와 살점에 이르기까지, 四肢와 뼈마디가 서로 이어져 하나가 된다. 깨뜨려도 열리지 않고 부딪쳐도 흩어지지 않는다. 위에서 움직이고자 하면 아래에서 저절로 따르며, 아래에서 움직이고자 하면 위에서 스스로 그것을 다스린다.

上下가 움직이면 가운데가 그에 응하고, 가운데가 움직이면 上下가 그에 화답한다. 內外가 서로 이어지고 前後가 서로 補完하니, 말하자면 하나로 꿴다는 것이 이와 같은 것이다! 핵심에는 努力해서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練習하여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狀況에 따라서 움직일 때는 龍이나 호랑이 같고, 나아갈 때는 급하기가 번갯불과 같으며, 고요할 때는 寂然湛然하니, 머물 때는 태산과 같이 고요하다. 또한 고요하다 해서 고요한 것이 아니며, 안과 바깥과 上下가 마음에 하나도 어긋나지 않는다. 움직인다 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며 前 後左右 均衡을 이루어 물 흐르듯 특이한 形式이 없어, 마치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아 급할 때는 아무도 막지 못한다.

마치 內功의 불기운이 한 번 일어나면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것과 같다.
한가로이 생각할 겨를이 없으며 번거롭게 따지고 의논할 수 없으니, 진실로 그렇지 않은 듯하면서 그러한 것이다. 대개 오랫동안 功을 쌓으면 有益하며, 功을 오래 쌓은 後에야 이룰 수 있다.이 성스럽고 일관된 배움을 생각해 보면, 반드시 많이 듣고 많이 아는 格物致知의 功德과 비슷한 점이 있다.

일에는 쉽고 어려움이 없는 것을 아는 것과 같아, 오직 스스로 나아가는 것에 의해 成功이 이루어지는 것이지 갑자기 초월을 할 수도 없고, 급작스럽게 성취할 수도 없어 천천히 順序를 따라 나아가면 점진적으로 이룰 수 있다. 또한 모든 뼈마디가 서로 貫通이 되어 있으니 上下 表里가 聯絡을 끊지 않는다. 대개 흩어진 것은 모이며 나누어진 것은 합쳐지니, 四肢와 뼈마디도 하나의 氣로 돌아가는 것이다.





2) 氣
  天地間에 한 번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으며, 또한 곧기만 하고 굽지 않는 것은 없다; 대개 萬物에는 짝이 있으며 勢力에는 돌아오는 것이 있다. 이것이 古今의 理致다.

世間의 理論을 비평하는 사람은 항상 있으며, 氣를 겸하여 論하는 사람도 있다. 대저 主體가 되는 하나가 어떻게 둘로 나누어지는가; 所謂 여기서 말하는 둘이란 呼吸을 말한다. 呼吸은 즉 陰陽이니 치면 움직이고 고요한 활동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氣는 呼吸이 없을 수 없으니 呼는 陽이요, 吸은 陰 이 된다. 위로 오르면 陽이 되고 아래로 내려가면 陰이 되며, 陽氣는 上昇하여 陽이 되고 陰氣는下行하여 陰이 되며, 陰氣가 上昇하면 陽이 되고 陰氣가 아래로 내려가면 또한 陰이 된다. 이것이 陰陽이 나누어지는 까닭이다. 어떻게 맑고 흐림이 생기는가? 위로 올라가는 것은 淸이 되고 아래로 내려가는 것은 濁이 되며, 맑은 것은 陽이요, 흐린 것은 陰이다.

이러한 까닭으로 나누어서 陰陽이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섞어서 統合하여 말하면 氣라 한다; 그러므로 氣에는 陰陽 이 없을 수 없으며 입에는 出入이 없을 수 없으니, 이것이 짝짓고 돌아오는 理致이다. 그런즉 氣 는 둘로 나누어지고 또한 다시 하나로 꿰어지니,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것이지 절대로 이러한 것을 구구하게 論할 일이 아니다.





3) 三節  
  대개 氣는 본래 몸이니 몸은 심히 많은 마디로 나누어진다. 만약 마디를 자세히 論한다면 拳術의 본래 宗旨와 멀어지게 된다. 오직 셋으로 나누어 論하려 하니 그 나누는 법을 알아보자.

三節은 上中下 혹은 뿌리, 몸통, 가지를 말한다. 몸으로 말한다면 머리가 上節, 가슴이 中節, 엉덩이가 下節이 된다.
얼굴로 말하자면 이마가 上節, 코가 中節, 입이 下節이요.
몸으로 말하면 가슴이 上節, 배가 中節, 丹田이 下節이요.
다리로 말하면 膀胱이 根節, 무릎이 中節, 발이 梢節이다.
팔로 말하자면 어깨가 根節, 팔이 中節, 손이 梢節이다.
손으로 말하자면 팔목(腕)이 根節, 손바닥이 中節, 손가락이 梢節이다.

이와 같이 본다면 발은 論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런즉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三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간단히 말해 三節로 이루어지지 않은 바가 없으며, 마음(意識)이 머물지 않는 것이 없다. 대개 上節이 분명하지 못하면 의지할 바도 없고 주관하는 바도 없게 되며, 中節이 不明하면 창자에 가득한 것이 功이요, 下節이 不明하면 반드시 엎어지게 된다. 이로써 본다면 몸의 三節部를 어떻게 소홀히 하겠는가.

氣의 發動에 이르러서 요컨대 梢節을 따라 일어나면 中節이 따르고, 根節이 그것을 재촉하게 될 뿐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나누어서 말한 것이요. 만약 합쳐서 말한다면 위로는 머리 끝에서 아래로는 발끝에 이르기까지 四肢와 백가지 뼈 마디가 모두 하나의 마디가 되는 것이니, 어떻게 三節이 있다고 하겠는가? 또한 어떻게 三節 가운데 또 三節이 있다고 하겠는가?





4) 四梢  
  시험적으로 몸을 論한 것 이외에 나아가서 四梢를 論해 보자. 대저 四梢라는 것은 몸의 나머지 단서다. 몸이라 하는 것은 처음에는 이에 이르지 못하며, 氣라는 것 또한 들어보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므로 때리면 안으로부터 밖으로 발하여, 氣는 본래 모든 몸에서 발하게 된다.

氣를 사용하는데는 몸을 근본으로 하지 않으면, 비어서 실하지 않은 것이 된다. 行하지 않고 또한 나타나지 않으면 實한 듯 하나 虛하게 되니 여기서 梢 또한 說明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손가락 발가락으로 몸의 梢라고 부른다면! 梢의 梢에 이르지도 못하게 된다.

四梢란 무엇인가, 發하여 하나이나 또한 發하는 系列이 있으니 五行으로 벌려 놓을 수도 없고, 四肢와도 무관하니 이러한 것으로 滿足할 만하게 說明할 수가 없다, 그러나 發하여 피의 梢가 되고, 피는 氣의 바다가 되고, 만약 모두 發하는 根源에 의거하지 않고 氣를 論한다면 피에서 氣는 생기게 된다. 피를 떠나지 않으면 發하는 것을 겸하지 않을 수 없으니, 發하는 것은 가득 차기를 희망하여, 피의 梢로 족하게 된다.

또한 혀는 살의 梢이며, 살은 氣의 주머니가 된다. 氣는 모든 살의 梢로 다닐 수가 없으니, 氣는 无로써 자신을 채우게 된다; 따라서 반드시 혀는 치아를 밀며, 살의 梢는 발이 된다. 뼈의 梢에 이른다는 것은 치아이며, 筋肉의 梢라는 것은 손톱이다. 氣가 생겨나서 뼈가 筋肉과 연결되지만, 치아에는 이르지 않으므로, 뼈의 梢에 이르지 않는다.

만일 이러한 理論에 만족한다면 치아가 筋 肉과 단절된 것이 아니며, 손톱이 뼈를 뚫는 것이 不可能 한 것이다. 結果가 이러하므로 四梢를 論하기에 족한 것이다. 四梢가 족하므로 氣가 이미 스스로 족하다. 이미 다시 虛하여 實하지 않으므로 實하나 다시 虛한 폐단이 되는구나!





5) 五臟  
  만일 勢로써 比喩한다면 勢는 氣를 말한다. 사람은 五臟을 얻어 形體를 이루며 五臟으로 말미암아 氣를 낳는다. 五臟이 實하여 性命의 根源이 되고 氣를 낳는 根本이 되니 心臟, 肝, 脾臟, 肺,腎臟이라 말한다.

心臟은 불에 屬하니 불꽃과 같은 모양이요, 肝은 木에 屬하니 曲直의 모양이요, 脾臟은 土에 屬하니 敦厚한 氣勢를 갖추었고, 肺는 金에 屬하니 바꾸는 效能이 있다. 腎臟은 水에 屬하니 아래로 潤澤하게 하는 功能이 있다. 이것이 五臟의 뜻이나 氣와 마찬가지로 대개 配合되어 섞여 있다.

무릇 世上에서 拳術을 論하는 사람들은 요컨대 이것을 떠나서 말할 수 없다. 안에 있는 것은 대개 肺로 胸廓을 삼으나, 肺는 五臟의 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개 肺가 움직이면, 다른 臟器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다. 양쪽 가슴의 가운데가 心臟이 되며, 肺가 그것을 감싸 보호하고 있다. 肺의 아래에 막이 있어서 위와 나누어져 心臟이 位置하게 된다.

心은 임금이 되니 心臟의 불이 움직이면, 대신들이 불의 명령을 듣지 않을 수 없다; 양 가슴의 아래, 오른쪽이 肝이 되고, 왼쪽이 脾臟이 되며, 뒤의 14가지 骨節이 腎臟이 된다. 허리에 이르러 두 개의 腎臟이 자리하고 先天의 第一이요, 또한 五臟의 根源이 된다; 그러므로 腎臟이 만족하면, 金, 木, 水, 火, 土가 各各 제 기틀을 나타내게 된다. 이것이 五臟의 部位를 論한 것이다. 그러나 五臟의 안에 있는 것은 各各 位置가 정해져 있으니, 몸에서 보이는 것, 또한 專屬이 되어 있다.

단지 地位가 대단히 많으므로 모두 말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대략 몸의 系統을 따라 말한다면, 가운데 것은 心臟에 屬 하고, 바꾸는 것은 肺에 屬하며, 뼈가 드러난 것은 腎臟에 屬하고, 筋肉이 이어진 곳은 肝에 屬하며, 살의 두터운 곳은 脾臟에 屬한다. 그 뜻을 생각해 보면 心臟은 猛虎와 같고, 肝은 화살과 같으며, 脾臟은 힘이 대단하여 無窮하며, 肺의 位置는 가장 오묘하게 變化한다. 腎臟의 氣가 움직이는 것은 바람처럼 빠르니, 이러한 것은 당사자들이 스스로 體驗할 바라, 筆舌로는 完璧하게 說明 할 수 없는 것이다.





6) 三合  
  五臟을 이미 분명히 알았으면 다시 三合을 論한다. 대저 三合이라는 것은 마음은 意合이요, 氣는 力合이요, 筋肉은 骨合이니 이것이 內 三合이다. 손은 足合이요, 팔꿈치는 무릎과 合이요, 어깨는 엉덩이와 合하니, 이것이 外三合이다.

만약 왼손과 오른발이 서로 合한다면, 왼쪽 팔꿈치와 오른 무릎이 서로 合이요, 왼쪽 어깨와 오른쪽 방광이 서로 合이다. 오른쪽의 셋과 왼쪽의 것도 마찬가지이다. 머리와 손이 合하며 손과 몸이 合하며, 몸과 걸음이 合하니 外合이 아닌 것이 있겠는가.

心臟과 눈이 合하고, 肝과 筋肉이 合하고, 脾臟과 살이 합하고, 肺와 몸이 合하고, 腎臟과 뼈가 合하니, 內合이 아닌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特別히 變化를 따라 말한 것이다. 綜合하여 말한다면 한 번 合함에 合하지 않는 것이 없다. 五臟과 모든 뼈마디도 그 理致 가운데 있다.





7) 六進  
  이미 三合을 알았으니 다시 六進으로 나아간다. 六進이 무엇인가? 머리는 六陽의 으뜸이 되고 몸을 두루 주관하는 主人이 된다. 五官과 뼈마디는 몸이 아닌 것이 없으니, 이것이 뒤에서 민다면 머리는 나아가지 않을 수 없다.

손은 先鋒이 되고 다리는 뿌리요 터전이 되니, 다리가 나가지 않으면 손도 또한 앞서지 않게 되므로 다리가 나아가지 않을 수가 없다. 氣는 팔에 모이며 機關은 허리에 있으니, 허리가 나가지 않으면 氣가 빠져 부실하게 된다.

이것이 허리가 나가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까닭이다. 意識은 몸을 두루 꿰뚫고 運動은 걷는 있으니, 걸음이 나가지 않으면 意識도 막혀서 할 수가 없게 된다; 이것이 반드시 나가야 하는 理由이니 왼쪽 위 끝까지 이르면 오른쪽으로 나가고, 오른쪽 위 끝까지 이르면 왼쪽으로 나간다.

모두六進이 되니 六進이 아닌 것이 없지 않은가! 간단히 말해: 아직 나아가지 않고 몸에 두루 하여 조금도 움직이는 않는 것과 一致한다. 한마디로 나가는 것을 말한다면, 全體를 아울러서 이에 말미암지 않는 것이 없으니, 六進의 도리가 이와 같다.

 


8) 身法  
  대개 손으로 敵을 칠 때, 全體가 身法의 도움을 받으니 身法이란 무엇인가? 縱, 橫, 高, 低, 進, 退, 反, 側이다. 縱이란 그 勢를 놓는 것이니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것이다. 橫은 힘을 쓰는 理致이니 개척하여 막힘이 없는 것이다.

高는 그 몸을 세워 몸이 커지는 뜻이 있다. 低는 몸을 누르는 것이니 몸을 모으는 모양이다. 進은 당연히 나간다는 뜻이니 힘을 다하고 용감하게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退는 마땅히 물러나는 것이니 그 氣를 빨리 回轉하여 氣勢를 돋군다. 反이란 뒤를 살피는 것이니 뒤가 앞이 된다.

側은 左右가 된다. 左右가 감히 나를 어떻게 당하겠는가. 要點만 말하고 拘拘하게 말하지 않는다. 대개 다른 사람의 强弱을 살펴 그 機密을 파악하고, 홀연히 縱하고 홀연히 橫하여 縱橫으로 勢力을 變遷하는 것은 한가지로 推定할 수가 없다. 홀연히 高하고 홀연히 低하여 高低가 수시로 移動하는 것을 어찌 한가지로 論하겠는가.

적당한 때를 맞아 나갈 때는 물러설 수 없다. 물러서면 그 氣가 弱해지게 된다. 의당히 물러설 때 물러서는 것이 退이니, 退하여 나아감을 고무한다. 이러한 進이 참다운 進이다. 즉 退 또한 실제로 進을 돕는 것이니, 만약 反으로 뒤를 살피면 뒤는 그것이 뒤가 되는 줄 알지 못한다.

側으로 左右를 살피면 側은 그것이 左右가 되는 줄 알지를 못한다. 綜合하여 말하면 보는 것은 눈에 있고 變化는 마음에 있으니 그 要點을 파악하는 것은 본래 몸에 있으나, 몸을 앞세우면 네 가지 體가 命을 받지 않고 行하는 것이다. 몸이 弱하면 백 가지 뼈마디가 深奧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니 身法을 살펴 보아야 할 것은 말할 必要도 없다.

 


9) 步法  
  이제 또한 四肢와 뼈 마디가 움직임의 主體가 되지만, 실제로는 步法을 運用하는데 있다. 步라는 것은 一身의 뿌리가 되며 運動의 主體가 된다.

그러므로 應戰이나 對戰에서 몸이 根本이 되지만, 몸의 基礎가 되는 것은 步法이 아닌 것이 없다. 機會를 따라 變化하는 것은 손에 있는데 이는 손이 轉移者가 되는 까닭이다. 또한 步法에는 進退反側이 있으니 步法이 아니면 어떻게 움직임의 기회를 만들 것인가, 抑揚伸縮도 步法이 아니라면 어떻게 妙를 나타내겠는가.

즉 觀察은 눈에 있고 變化는 마음에 있으며 둥글게 움직이다. 예리하게 맺는 千變萬化를 이루어 窮迫하지 않게 하는 것이 어떻게 步法의 司命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要點은 억지로 하지 않고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動作은 無心에서 나오고 鼓舞(장고춤)는 알지 못하는 중에 나오게 되니, 몸이 움직이고자 하면 步法이 두루하게 되고, 손이 움직이려면 발도 또한 긴박하게 움직인다. 그렇게 되기를 기약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며, 달리지 않아도 달리는 것처럼 되니, 所謂 위에서 움직이기를 바라면 아래에 서 스스로 그것을 따른다는 것이,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또한 步法은 前後로 나누어지니 바른 位置가 있는 것을 步라 한다. 바른 位置가 없는 것도 또한 步이다. 만약 前步가 後步를 짓고, 後步가 前步를 지으며 다시 前步로서 後步의 前步를 지으며 後步가 前步의 後步를 지으면 前後가 또한 스스로 정해진 位置가 있게 된다.

綜合해 말하자면 勢를 論할 때, 要點이 되는 것은 步法이다. 활발하고 활발하지 못한 것은 步法에 있고 영특하고 영특하지 못한 것도 또한 步法에 있으니 步法의 應用은 큰 것이다.




10) 剛柔  
  대개 拳術의 應用은 氣와 勢에 있다. 그러나 氣에는 强弱이 있고, 勢는 剛柔로 나누어진다. 氣가 强한 사람은 勢의 强함을 取하고, 氣가 弱한 사람은 勢의 柔함을 取한다.

剛이라는 것은 천 군의 힘으로 백군을 막고, 柔한 것은 백군의 힘으로 천 군을 破한다. 힘과 기 술이 剛柔가 나누어지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미 剛柔가 나누어지고 나면, 發用에 또한 나누어짐이 있게 된다.

四肢가 發動하고 氣가 바깥으로 行해지며, 안으로 고요하고 무겁게 堅持하면 剛勢가 된다. 氣가 안에 모이고 밖으로 가볍고 和하게 나타나면 柔勢가 된다. 剛을 應用함에 柔함이 없을 수 없으니, 柔가 없으면 빨리 돌아갈 수가 없게 된다.

柔를 應用함에 剛함이 없을 수 없으니, 剛이 없으면 핍박함이 成功할 수 없다. 剛柔가 서로 도우니 粘, 遊, 連, 隨, 騰, 閃, 折, 空, , 이, , 捺등이 자연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剛柔 는 偏僻하게 使用할 수 없으니, 武를 使用하는 것을 어떻게 소홀히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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