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무술 이야기

피겨의 과학

운영자 2011.03.31 17:09 조회 수 : 2500

스케이트 날이 마찰력을 줄인다

김연아의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보다보면 '인간의 몸으로 어떻게 저토록 빨리 회전할 수 있을까'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또 '회전을 할 때는 왜 팔을 벌리고, 점프를 할 때는 손을 가슴에 모으거나 위로 치켜들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과연 피겨스케이팅의 동작 속에는 어떤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는 것일까.

스케이팅은 스케이트의 날과 얼음 사이의 마찰력을 최소화하면서 얼음 위를 지치는 운동이다. 빙판을 베는 날카로운 날이 창조하는 부드러움의 극치이다. 아이스링크는 빙판 밑의 냉각 파이프로 빙판의 온도를 조절한다. 피겨스케이팅은 영하 3~4℃ 정도의 무른 얼음에서, 아이스하키나 쇼트트랙은 영하 7~8℃의 딱딱한 얼음에서 경기를 한다. 그렇다면 선수들은 얼음 위에서 어떻게 그토록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은 것일까.

이는 얼음과 스케이트 날이 만나는 부분의 마찰력이 작다는 데 있다. 많은 사람은 물보다 얼음이 더 미끄럽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얼음이 미끄러운 것은 얼음 위에 있는 물 때문이다. 물이 얼음과 접촉하는 물체 사이의 마찰을 줄여 주기 때문에 미끄러운 것이다. 스케이터들이 얼음 위를 달릴 때 얼음과 스케이트 날의 마찰과 압력에 의해 열이 발생하고, 이 열이 얼음을 녹여 얇은 물층을 만든다. 이때의 물층이 윤활유 역할을 함으로써 스케이트 날이 자연스럽게 미끄러지도록 도와준다. 스케이트에서 마찰력은 빼놓을 수 없는 필수 요소이다. 마찰력을 최소화해야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 또한, 얼음 위에서의 스피드나 회전 등은 스케이트 날의 모양과 관련 있다. 피겨스케이팅의 경우 90%가 회전 운동인 만큼 부츠 날의 앞부분이 둥글고 뒷부분은 평평하다. 회전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얼음에 접하는 양끝도 위로 약간 휘어져 있다. 빨리 돌고 안정적으로 정지하는 데 유리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원심력을 이겨내기 위한 스케이트 날에 숨어 있는 곡선의 원리이다. 반면, 얇은 강철로 만들어진 스피드스케이팅의 경우, 한마디로 스케이트 날이 평평하다. 얼음판에 닿는 날의 면적이 고르게 넓어야 차는 힘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또, 얼음에 닿는 부분이 직선일 뿐 아니라 가늘고 긴 것이 특징이다. 스케이트 날을 가늘게 하면 압력이 높아져서 날과 얼음 사이의 마찰력이 줄어들어 잘 미끄러진다. 날과 얼음이 닿는 면적이 작을수록 압력이 커져서 얼음이 쉽게 녹는다. 스케이ㅌㅡ와 정반대인 지면을 달리는 자동차의 광폭 타이어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폭이 넓은 광폭 타이어는 압력을 줄여 타이어와 도로 사이의 마찰력을 크게 한 것이다. 때문에 지면을 굴러다닐 때 빗길이나 눈길에도 잘 미끄러지지 않는다. 결국, 스케이트를 재미있고 스릴 있게 즐길 수 있는 까닭은 날이 마찰력을 줄여주기 때문이다.

충분한 회전력은 스피드와 토크에 달렸다

스케이터들은 오직 얇은 스케이트 날에만 의지하여 얼음 위를 달린다. 피겨스케이팅에서는 그러다가 물리학의 기초 원리를 이용해 공중으로 치솟기도 하고 스핀과 활주를 한다. 특히 김연아 선수는 스피드가 대단하다. 스피드가 빠르고 스케일이 크며 정확한 점프를 구사하기 때문에 그녀는 전문가들로부터 다른 선수와 질적으로 다르다고 평가된다.

다른 선수들은 착지할 때 실수할까 봐 점프하기 전에 속도를 약간 늦추는 반면, 김연아 선수는 달려오던 빠른 속도 그대로 도약하기 때문에 연기의 흐름도 끊어지지 않을 뿐 아니라 공중에서 날아 이도ㅇ하는 거리가 길어 더 멋있게 보인다. 똑같은 점프를 해도 김연아 선수의 것이 시원시원하고 깔끔하다는 느낌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겨스케이팅에서는 점프, 스핀, 리프트, 스텝, 턴 등 다양한 기술이 사용된다. 이 가운데 빠르게 질주하다가 힘차게 공중으로 도약해 회전한 뒤 착지에 성공하는 점프 기술은 피겨스케이팅의 백미이다. 점프의 완벽한 조화는 원하는 회전 수를 얻기 위하여 얼마나 더 높이 뛰어야 하고, 또 얼마나 빨리 돌아야 하는지 등과 같은 물리학의 지배를 받는다.

점프 기술의 핵심은 도약력과 회전력이다. 회전의 성공 여부는 선수가 지면을 떠나는 도약의 순간에 달려 있다. 공중에서는 더 이상 힘을 쓸 수가 없으므로 바닥을 박차는 그 순간의 힘만으로 회전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도약에 앞서 선수들은 공중으로 치솟기 위한 탄력을 얻고자 얼음 위를 빠르게 미끄러져 속도를 낸다. 이때 상체를 앞으로 기울여 바람의 저항을 줄이고, 신체의 중심을 앞쪽으로 실어 가속도를 높인다. 그리고 도약하기 직전 얼음을 밀어제치면서 무릎의 스프링을 이용해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바로 얼음을 누르는 이 동작이 물체를 회전시키는 힘인 토크(torque)를 만들어낸다. 선수들은 반드시 도약하기 전에 가능한 많은 토크를 키워야 한다. 몸을 도약할 때 얼마나 많은 운동량을 가지고 뛰어오르느냐, 즉 선수의 무게 중심이 수직 방향으로 얼마나 빠른 속도로 올라가느냐에 따라 최고 높이가 확보되기 때문이다. 스케이트 날이 얼음을 떠나는 순간의 최고 높이는 충분하게 회전을 하게 한다. 힘이 부족하면 회전 동작이 흐트러져 균형을 잃기 쉽다.





  
팔을 벌렸다 모으고 다시 펴는 점프 기술은 물리학의 원리가 응용된 과학적인 동작이다. ⓒ연합뉴스


팔을 벌리고 점프를 하는 이유

여기서 잠깐, '점프의 교과서'로 불리는 김연아 선수의 점프하는 모습을 살펴보자. 그녀는 환상적인 궤적을 그리며 공중 3회전에 성공한다. 눈 깜짝할 사이지만 그 순간만은 중력에서 자유롭다. 그런데 빙판에서 공중으로 도약하기 바로 전 그녀는 양팔을 벌리고 점프를 시작한다. 이어 공중에 솟구치자마자 팔을 가슴으로 모아 몸을 오므린 뒤 빠르게 회전을 한 후 다시 팔을 벌리며 빙판에 내려선다. 왜 굳이 이러한 동작을 취하는 것일까.

공중에서 취하는 이와 같은 자세는 그저 예쁘고 멋지게 보이려는 것이 아니다. 점프와 회전을 잘하기 위한 '과학적인 동작'이다. 먼저 공중으로 뛰어오를 때 팔을 벌리는 이유에 대해 알아보자. 공중에서 3회전 이상을 해야 하는 고난도 점프를 하려면 일단 힘차게 솟아올라 공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야 한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자유 낙하의 원리처럼, 공중에서의 회전 수는 체공 시간과 회전 속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체공 시간이 길수록 그리고 회전 속도가 빠를수록 회전 수가 늘어난다. 그러나 아무리 체공 시간이 길어도 1초 남짓이다.

그렇다면 강한 회전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팽이에 줄을 감아 강하게 당기는 것처럼, 머리와 발끝을 잇는 신체 중심축에서부터 무게 중심(회전할 때 힘을 발휘하는)까지의 거리(반지름)를 멀게 하는 동작이 회전을 위한 충분한 힘을 축적시킨다. 그게 바로 팔을 넓게 벌리는 동작이다. 도약하는 순간 양팔을 최대한 벌려야 반지름이 커져 더 많이 회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가장 큰 토크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차렷 자세보다 양팔을 벌리면 회전력이 3배나 증가한다.

이렇게 힘을 모았으면 이제 빠르게 회전해야 한다. 공중으로 뛰어오른 후 빠르게 회전하여 목적하는 회전 수에 도달하려면 일단 회전을 방해하는 저항력(관성모멘트)을 최소화해야 한다. 얼음에 닿아 있는 스케이트 날이 떼어지기 직전 양팔을 가장 많이 벌렸다가 얼음을 떠나 도약하는 순간 팔을 몸쪽으로 최대한 접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회전하는 물체는 외부의 힘이 주어지지 않으면 회전 반경이 작을수록 회전 속도가 더 빨라진다는 원리에 의해서다. 관성모멘트는 물체의 회전 운동에 대한 관성의 크기를 나타내는 양으로, 관성모멘트가 크면 회전하기 어렵고 작을수록 회전하기 쉽다.

그래서 공중에서는 몸을 회전축을 중심으로 최대한 수직으로 만들어야 한다. 팔을 몸쪽으로 밀착시키고 다리도 두 종아리 살이 서로 닿도록 붙여 몸을 '일(-)자'로 만든다. 신체 중심축 주위로 양팔을 가져오면 관성모멘트가 최소화해 더 빠른 회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팔을 몸 바깥쪽으로 길게 뻗을수록 회전할 수 있는 회전력이 커지고, 회전할 때 팔과 다리를 몸에 밀착시킬수록 회전 속도가 높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다이빙 선수도 회전 수를 늘리기 위해 공중에서 몸을 최대한 끌어안아 관성모멘트를 줄인다.

이때 팔과 다리를 몸 바깥쪽으로 최대한 뻗어서 공중으로 뛰어오르고 팔과 다리를 재빨리 붙여서 회전해야 한다. 만약 팔을 먼저 접으면 회전력을 충분히 얻지 못하거나, 프리로테이션(pre-rotation, 점프하기 전에 미리 회전하는 반칙의 일종)으로 감점을 당한다. 반대로 팔을 너무 늦게 접으면 그 사이 몸이 회전을 시작해 팔에 걸리는 원심력이 커져 팔을 접기가 어려워진다. 회전하는 동안에는 팔에 작용하는 원심력이 중력의 네 배까지 커지기도 한다. 점프한 뒤 회전이 부족하거나 착지할 때 넘어지는 경우의 대부분은 도약한 뒤 팔을 몸에 밀착시키는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이다.

원하는 회전 수를 돌고 나면 이제 마지막 남은 일은 착지(Landing)이다. 착지할 때는, 왼쪽 다리는 최대한 몸 바깥쪽으로 뻗고 오른쪽 다리는 무릎을 굽혀 넘어지지 않도록 몸의 무게 중심을 낮춘다. 그리고 회전할 때 오므렸던 팔을 다시 넓게 벌려 회전 반경을 길게 만들어 회전 속도를 늦춘다. 무게 중심을 순간적으로 낮추고 지면과 접촉한 부위를 최대한 크게 하면 할수록 안전하다. 안정적인 정삼각형의 무게 중심이 위태로운 역삼각형보다 낮은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우아한 스핀은 '각운동량 보존 법칙'이 적용된 것

김연아 선수는 점프 실력이나 표현력도 뛰어나지만, 그녀의 트레이드마크는 역시 스핀(Spin) 연기이다. 스핀은 다양한 자세를 유지하며 제자리에서 돌면서 점점 속도를 빠르게 회전하는 동작이다. 점프의 회전에서처럼 스핀에서도 처음에는 팔을 벌리고 천천히 회전을 하다가 팔을 안쪽으로 모으면서 회전 속도가 매우 빨라진다. 팔과 다리를 모았다 펴ㄹ치는 것만으로도 회전 속도가 빨라졌다 느려졌다 하다니, 스핀에는 또 어떤 과학적 원리가 숨어 있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스핀은 피겨스케이팅 경기에서만 가능한 독특한 기술이다. 하나의 에지(스케이트 날)로 온몸의 균형을 잡아 중심축 위에서 회전한다. 좋은 스핀은 중심축이 잘 잡혀서 그 하나의 중심점(Center)을 벗어나지 않고 빠르고 많은 회전을 하는 것이다.

스핀은 물리학에서의 '각운동량 보존 법칙'이 적용되어 가능하다. 각운동량은 회전하는 물체에 나타나는 물리량이다. 직선으로 움직이는 물체가 선운동량(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자신의 운동을 보존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듯이, 회전하는 물체는 자신의 회전을 보존하려는 경향인 각운동량을 지닌다. 즉, 회전하는 물체는 운동 상태의 전과 후에 있어서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게 '각운동량 보존 법칙'이다.

각운동량 보존 법칙에 따라 스핀 운동을 하는 피겨스케이터의 팔의 질량, 몸 밖으로 뻗어 나온 팔의 폭, 회전을 곱한 값은 항상 같아야 한다. 여기서 피겨스케이팅 선수의 팔의 질량은 변하지 않으나 몸 밖으로 나온 팔의 폭은 위로 올리거나 접을 경우 줄어든다. 그런 상황에서 각운동량의 값이 보존되려면 속도가 점점 빨라질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줄어든 팔의 폭만큼 보충해줄 수 있도록 속도가 빨라져야 한다는 얘기이다. 피겨스케이팅 선수가 제자리에서 회전 연기인 스핀을 할 때 점프에서처럼 더 빨리 회전하기 위해 자신의 팔을 끌어들이는 것은 이런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이것을 식으로 나타내면 '각운동량=회전 반경(신체 회전축에서 질량까지의 거리)×회전 속도'이다.

예를 들어, 회전의자에 앉아 의자를 돌려보자. 돌아가는 도중 팔을 벌리면 회전 속도가 뚝 떨어지다가 다시 팔을 내리면 회전이 빨라진다. 단지 반지름의 간격이 준 것만으로도 속도가 달라지는 것이다. 운동량을 보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핀에서도 마찬가지다. 경기 장면 속에서 김연아 선수가 한쪽 다리를 빙판에 세우고 다른 발과 팔을 쭉 편 채 도는 스핀은 느리지만, 몸을 쭉 펴고 팔을 가슴에 붙이며 도는 스핀은 눈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빠르다. 각운동량을 유지해야 하는 원리가 작용해 저절로 회전이 빨라지는 것이다.

피겨 운동 하나에도 이렇게 많은 과학이 숨어 있다니 새삼 놀랍지 않은가. 물론 과학이 전부는 아니다. 나머지 절반의 마법은 김연아 선수의 땀으로 완성된다. 피겨스케이팅 동작의 과학적 원리는 체계적이고 꾸준한 훈련을 통해서만이 완벽한 연기로 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을 이용한 뛰어난 기술을 구사하려는 노력의 땀을 통해 스스로를 발전시켜 나가는 그녀는 피겨스케이팅의 진정한 승리자이다. 이제 남은 것은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자신의 장점을 더 갈고 닦아 우리나라 최초로 피겨 부문 금메달 소식을 들려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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